"선거제도 개혁 원한다", 연세대에 붙은 '팩트폭격' 대자보

지난 25일 교내 게재, 

'대통령 1인 정치 벗어나 민주주의 실현해야' 주장


"우리는 대한민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한다."

지난 25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에 붙은 대자보다. '박근혜 이후 정치시스템을 고민하는 연세학생들' 명의로 붙은 대자보는 "우리는 대통령 한 사람 바꾸려고 촛불을 든 것이 아니었다"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했다. 

이 대자보가 붙은 것은 지난 23일에 있었던 '정치개혁' 관련 대선후보 토론회 때문이다. 토론에서 선거제도 개혁 문제는 마지막에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은 국민들을 이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헷갈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토론을 본 한 시민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자기들끼리 하는 건지'라고 평했다. 그래서인지 언론 보도들도 이 부분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토론의 광경은 이랬다. 먼저 심상정 후보가 "선거법 개혁에 대해 소극적인 것 아니냐?"고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고, 문재인 후보는 "2012년에도 그랬고 이번 대선에서도 본인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공약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선거법 개혁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재인 후보가 말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2015년 2월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말하는 것이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눈 뒤, 각 권역 내에서는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고, 각 정당은 자기 정당이 받은 의석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100석이 배정된 권역이고, A당이 정당투표에서 20%를 받았다면 A당은 20석을 배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A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15명이라면, 지역구 당선자부터 먼저 인정하고 모자라는 5석은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만약 A당이 지역구 당선자가 없다면 20석 전체를 비례대표로 채우게 된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맞추되, 지역구 선거도 하는 방식으로 독일과 뉴질랜드, 스코틀랜드 등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에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언제까지 선거법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확인했고, 문재인 후보는 여기에 대해 분명한 일정은 밝히지 못하고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온 국회의원 정수 문제였다. 

심상정 후보가 안철수 후보에게 "과거에 국회의원 정수를 200석으로 줄이겠다고 한 입장에 지금도 변화가 없는지"를 물었고, 안철수 후보는 200석이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도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한 방법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런 안철수 후보의 답변은, 안철수 후보가 10대 공약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는 상치되는 점이 있었다. 사실 안철수 후보가 공약으로 내건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문재인 후보가 말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큰 차이가 없는 얘기이다. 둘 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후보가 후보명부를 구속형(정당이 제출한 순번대로 하는 것)으로 하느냐 개방형(정당이 제출한 순서가 유권자들의 선호에 의해 변동 가능한 것)으로 하느냐를 두고 잠깐 논쟁을 했지만, 그 부분은 별도로 논할 문제이다. 어쨌든 정당득표율대로 의석비율을 맞추겠다는 것에는 두 후보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바꾸려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2:1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그렇게 권고했다. 

2:1의 비율을 맞추려면, 지금 지역구 의석이 253석이니까 지역구 의석을 대폭 줄이지 않는 이상 비례대표 의석을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그에 따라 국회 전체 의석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점에서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석을 줄일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모순점이 있었다. 

그래서 심상정 후보는 의원정수를 줄이면 안철수 후보가 공약하고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 어렵지 않느냐고 지적했는데, 여기에 유승민 후보가 끼어들어 자기는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도 20명으로 줄이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토론은 더 진행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참 아쉬운 대목이다. 

우선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입장을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대선토론에서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서까지 토론이 이뤄진 것도 좋다. 심상정 후보의 적극적인 질문이 이런 토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몇 가지 실망스럽거나 아쉬운 대목이 있다. 우선 국회의원 정수를 놓고 토론한 내용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특히 유승민 후보가 얘기하는 '200명으로 줄이자'는 것은 현실성도 없고, 국회를 개혁하는 방법도 아니다. 숫자를 줄이면 오히려 특권은 더 커질 것이다. 그것이 상식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이나 조경태 의원 같은 사람이 비례대표 폐지, 의원정수 축소 같은 주장을 했다. 유승민 후보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남재준, 조경태 급으로 만드는 것이고 '합리적 보수'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권은 없애고 의석은 늘리는 것'이다. 2017년 국회예산이 5744억원에 달하는데, 그 돈으로 300명이 아니라 360명의 국회의원을 쓰는 것이 주권자들에게는 이익이다.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세비, 보좌진 숫자를 줄이고 80억 원이 넘는 특수활동비 예산(영수증도 없이 쓸 수 있는 예산)을 없애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개혁방안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논의를 하는 것은 '정치불신'에 편승하겠다는 것으로, 대선후보들이 택할 입장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도 선거법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어야 한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후보이고, 정치개혁에 의지를 가진 후보라면 어떤 일정으로 선거법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정도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3일 있었던 정치개혁에 관한 대선후보 토론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대학가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에 붙은 대자보와 같은 목소리에 대선후보들이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그리고 남은 대선기간 동안에 선거법 개혁에 대해 보다 치열하고 분명한 입장들을 밝힐 수 있기를 바란다. 대자보 내용은 이렇다.

"단언컨대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고 대한민국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 1인이 좌지우지하는 정치, 관료와 재벌 앞에 무기력한 정치에서 벗어나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바로서야 한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국회에서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고, 민의를 소극적으로 반영하는 정당은 그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정치가 실현된다."

하승수(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320444&srscd=0000011591&srs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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